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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물랑루즈, 19세기 프랑스 몽마르트의 전성기, 뮤지컬 영화

by JAVERICK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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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

파리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주는 영화 물랑루즈입니다. 물랑루즈의 배경인 파리 그리고 몽마르트에 대한 설명을 하고 몽마르트에서 일을 했던 Demimonde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파리의 몽마르트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서 영화를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1. 영화 물랑루즈 소개

10년에 한 번 정도 파리를 주제로 한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가 대박을 치면서 그때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파리 한번 꼭 가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 나옵니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작품이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과거에는 물랑루즈가 그런 영화였습니다. 특히 물랑루즈의 주제곡에 프랑스어로 나랑 오늘 밤 같이 보낼래요?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영미권 학생들이 유일하게 아는 프랑스어 문장이 그 가사였습니다. 배낭여행을 파리로 와서 그 문장을 흥얼거리고 다녀서 프랑스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고는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관광객들도 파리에 가면 꼭 찾는 곳이 바로 몽마르트 거리입니다. 그리고 가서 대부분 실망을 합니다. 그곳에 가면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관광객들에게 가짜 물건을 파는 사람들 강매를 하는 잡상인들 소매치기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거리라고 알고 왔는데 많은 실망을 합니다. 하지만 몽마르트의 역사를 보면 몽마르트가 재밌는 이유는 잡상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마르트가 원래 파리에 역사에서 어떤 곳인지 알고 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를 알게 되면 몽마르트와 물랑루즈 영화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19세기 프랑스의 몽마르트

프랑스 지명에 Mont Saint Michel이나 Montmartre와 같이 Mont이 들어가면 작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몽마르트는 파리의 북쪽 오늘날 18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파리에서 유일하게 지형이 고지대인 곳입니다. 몽마르트의 두 번째 파트 martre라는 단어는 순교자를 뜻하는 martyr에서 왔습니다. 이곳에서 3세기 프랑스 파리의 초대 주교 Saint Denis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Saint Denis가 참수 당한 자기의 머리를 들고 오른 언덕이라서 몽마르트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몽마르트에 관련된 여러 역사 책을 보면 몽마르트는 아예 이름이 붙은 시기부터 신비로운 이야기로 먹고사는 곳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모일만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몽마르트가 파리의 18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에는 파리가 지금보다 훨씬 작아서 몽마르트는 파리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파리의 북쪽 성곽 바로 밖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중세기의 대부분의 성곽 바로 밖에 있는 마을이 그렇듯이 몽마르트도 파리 사람들이 도심에서 처리하기에는 약간 애매하거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장소였습니다. 파리 같은 경우에는 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조그만 공장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달했음에도 증기기관 기계를 놓을 큰 공장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두질을 하거나 펄프를 빻아서 종이를 만드는 일을 할 때 고지대인 몽마르트에 가서 바람을 이용해서 풍차로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몽마르트에 두 번째 주요 사업은 바로 석고 사업입니다. 파리하면 우리가 먼저 하얀 집들을 떠올립니다. 파리 사람들은 돌로 집을 짓고 석고를 발라서 집을 보호했습니다. 그 석고가 대부분 몽마르트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몽마르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내리는 지하철 역중에 Blanche 하얀색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그곳이 그 당시에 석고를 캐는 곳이어서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던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Blanchisserie 프랑스어로 세탁 공장이 몽마르트에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이 당시 파리의 가난한 여성들이 먹고사는 방법 중에 하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세탁 필요하신 분을 찾으면 부유한 집안에서 침대 시트처럼 집에서 빨리 어려운 물건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여성들이 빨래를 한 다음에 다시 갖다주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분들도 몽마르트에서 많이 작업을 했습니다. 몽마르트에 가서 가이드랑 같이 걸어 다니다가 조그만 광장에 잠깐 멈추게 됩니다. 그곳은 옛날에 몽마르트에 대표적인 빨래터가 있던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집은 피카소를 비롯한 몇 명의 예술가가 작업을 한곳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빨래터와 예술가의 작업실이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빨래터가 있는 것이 몽마르트가 예술가들을 모이게 한 이유입니다. 그 당시 빨래터에서 일하는 여성분들 중에 남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분들이 많았습니다. 남 이탈리아는 아무래도 기후가 덥다 보니까 프랑스 여성들보다는 훨씬 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랐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필요한 누드모델의 일을 하는데 반감이 덜 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모델을 쉽게 섭외할 수 있는 빨래터 부근에 스튜디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3. 몽마르트의 전성기

사틴이라는 여주인공을 보면은 한 공작을 자신의 후원자로 만들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실제로 몽마르트에 많은 여성들의 기구한 운명에 일부입니다. 몽마르트는 파리에서도 가장 가난한 여성들이 살았던 동네입니다. 그들이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Demimonde이라는 것을 통해서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사교계를 monde라고 부르기 때문에 Demimonde는 약간 사교계와 비슷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체로 중산층이거나 빈민층 출신인데 귀족들과 뭔가 접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물랑루즈의 댄서들이나 예술가들의 모델들 같은 여성들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이런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주로 유부남인 귀족 남자들과 연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대체로 별로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과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춰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혼외 연애에 대해서 관대했던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부남들이 Deminmonde에 속한 여성들에게 집을 사주고 말하자면 두 번째 살림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일종의 신사도가 있어서 연인 관계를 깨게 되었을 경우 내가 한때 사랑했던 여성이 길거리로 나가는 건 내가 볼 수 없다고 해서 일종의 퇴직 연금과 비슷한 돈을 두둑하게 챙겨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귀족의 후원을 동시에 받는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지하 사회계의 스타가 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사틴같은 경우에는 원래 귀족을 후원가로 낚으려고 하지만 가난한 작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인생을 그대로 산 몽마르트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Marie Duplessis라고 하는 동백꽃 여인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Marie Duplessis는 실제로 매일 같이 동백꽃 하나를 드레스에 꽂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얼마나 이쪽에서 인기가 많았는지 후원자들이 넘쳐나서 요일별로 후원자들을 지정해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Marie Duplessis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 있었는데 Alexadre Dumas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삼총사를 쓴 소설가이고 그의 아들이 Marie Duplessis와 열렬하게 사랑에 빠집니다. Marie Duplessis는 결핵이 있어서 자신의 결핵 치료비를 댈 수 있는 재력의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핵을 고치기 위해서 좋다고 하는 온천을 다니며 돈을 너무 많이 쓰자 이 남편하고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치료비로 이제까지 벌어들인 돈을 다 쓰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작고한 뒤에 Alexadre Dumas가 동백꽃의 숙녀라고 하는 소설을 쓰게 되고 이 소설은 오늘날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필독도서 일 정도로 프랑스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학 작품이 됩니다. 나중에 베르디의 오페라 La Traviata에 영감을 줬기 때문에 보헤미안 여성하면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자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예술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국 불치병으로 죽는 캐릭터가 몽마르트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나중에 Alexadre Dumas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오늘날 그 두 사람은 몽마르트의 공동묘지에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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