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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영광의 날들, 영화 기본 설명,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나의 생각

by JAVERICK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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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한쌍이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의 포스터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군인들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 영광의 날들 영화 기본 설명과 역사 배경과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생각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1. 영화 기본 설명

이 영화의 이제 프랑스 원제는 Indigenes이고 원주민이라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를 위해서 싸운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원주민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거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마자 프랑스 본토는 나치 군대에게 패배하고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랑스 본토에는 필리프 페텡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나치 괴래 정권이 수립되게 됩니다. 런던으로 망명가에 있는 Charles de Gaulle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나치 저항군 세력이 집결하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저항했다는 의미로 레지스탕스라고 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주로 레지스탕스 그러면 프랑스 안에서 게릴라 활동을 했던 사람들 중심으로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지스탕스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프랑스 본토는 함락됐지만 세계 전역에 있던 방대한 프랑스 식민지에 많은 프랑스 군인들과 국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들 같은 경우에는 Charles de Gaulle이 주도하는 자유 프랑스의 편을 가장 적극적으로 들었고 전쟁 막바지에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 출신 군인들이 프랑스 깃발을 달고 싸웠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이 프랑스를 괴레 정권으로 기억하기보다는 자기네와 동등한 연합군 승전국으로 기억하고 프랑스가 전범 국가가 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프리카 군대의 역할은 굉장히 굉장히 막대했습니다. 이 아프리카 군대는 두 개의 다른 분류로 구성이 되어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아프리카 식민지에 가서 정착한 백인들로 구성된 부대는 그 사람들의 별명 발만 까맣다는 뜻의 Pied Noir라는 속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원래 아프리카 원주민 출신들로 구성된 부대를 원주민 부대라고 불렀습니다. 이 부대는 프랑스를 위해서 싸우고 피 흘리고 죽었지만 프랑스인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갖다가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줬고 이것을 처음으로 조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프랑스 영화제인 칸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사를 볼 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유 평등 박애를 국가적 이념을 가진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제국주의를 하는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그 많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프랑스의 깃발을 달고 자기가 프랑스에 가서 피 흘리고 죽어갔는지 이 두 가지를 이해하면 이 영화를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준비했습니다.

2.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2-1. 알제리와 프랑스

이제 알제리와 프랑스는 16세기까지 돌아가는 굉장히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알제리가 명목적으로는 터키 이스탄불의 수도를 두고 있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리고 Algiers라고 하는 해변 동네에 있는 dey라는 터키 출신 사람이 알제리아를 다스렸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알제리 지도를 보면 알제리의 대부분이 사막이고 알제리의 내륙 쪽에는 투아렉 쪽이나 베르베르족 같은 유목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이동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대도시에 어떤 권력이 들어와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lgiers에 있는 dey의 권력은 자기 수도에 국한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알제리가 그렇게 비옥한 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 이제 이슬람의 율법에 의하면 다른 무슬림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그 시대에 어느 대제국이나 마찬가지로 막대한 노예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dey가 해적선을 만들어서 유럽의 여러 남부 도시들 이탈리아나 스페인이나 프랑스 남부의 도시들을 침략해서 크리스천 노예들을 잡아서 터키에다 파는 것을 허용했고 Algiers와 튀니지의 수도인 Tunis가 이런 해적 활동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루이 14세 시대 이제 160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 작품에 터키에 노예로 팔려간 백인 노예들의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유럽 왕들이 자기의 왕권을 과시하고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갖다가 잡으려고 할 때 큰 함대를 조직해서 Algiers나 Tunis으로 보내서 무력시위를 한 다음에 이 잡혀간 노예들을 되찾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이 큰 이제 정치적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루이 14세 때부터 끊임없이 몇십 년에 한 번씩 프랑스가 이런 함대를 조직해서 Algiers를 쳐들어가곤 했습니다.

2-2.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화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알제리를 식민화시키는 데에는 파리채 사건이라고 하는 유명한 외교 사건이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Algiers의 데이가 프랑스의 영사를 파리채로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 모욕을 갖다 복수하기 위해서 프랑스가 알제리에 1830년에 쳐들어간 다음에 그 이후로 알제리아가 프랑스의 군사 식민지가 됩니다. 이 파리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뒤로 돌아가서 나폴레옹 시대로 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폴레옹 왕이 이탈리아에 쳐들어갔을 때 프랑스에도 식량 상황이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럼 이탈리아에 가서 군인들이 먹을거리를 어디서 구했냐 알제리가 중요한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거기 많은 상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상인들을 통해서 북아프리카에서 많은 먹거리를 사들였다고 합니다. 그중에 이제 대표적인 사람이 Bacri라고 하는 유태인 상인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당연히 그 당시에 거래가 그랬듯이 먹거리를 배달하면 바로 현찰 결제를 하는 게 아니고 외상으로 식품을 받게 됐는데 나중에 나폴레옹이 이제 패전을 해버리니까 Bacri의 입장에서는 돈을 받을 사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근데 Bacri가 사업을 할 때 Algiers의 정치 지도자 대의한테서 돈을 꿔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Bacri가 부도가 나면 dey도 돈을 못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dey는 나폴레옹이 무너진 다음에 돌아온 원래 부르봉 왕가 프랑스의 원래 왕가한테 나폴레옹이 진 빚을 갚으라고 계속 항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부르봉 왕가 입장에서는 나폴레옹은 원래 자기네 나라의 왕위를 갖다가 찬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진 빚을 갚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제리에서 너무 강력하게 항의하니까 1820년대 부르봉 왕가가 빛의 반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알제리의 dey는 계속 항의를 하면 돈을 다 갚을 줄 알고 7년 동안 더 항의를 하게 되고 1827년까지 계속 빚을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알제리의 영사가 핑계를 대면서 돈을 주지 않자 분노를 한 Algiers의 dey가 파리채로 그 사람을 때리게 됩니다. 근데 그때 이제 알제리의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1830년은 레미제라블에 나온 폭동이 일어나기 딱 2년 전입니다. 그때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서 부르봉 왕가가 전복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하던 시기입니다. 프랑스 왕들은 자기 정권의 위기가 생기면 북아프리카를 침공해서 민심을 잡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슷한 논리로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샤를 10세가 자기네 영사가 당한 모욕을 보복한다는 명목 하에 알제리를 쳐들어가게 되고 군사적으로 점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1830년에 왕가가 뒤집히고 또 다른 왕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 새로 들어온 정권은 원래는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알제리아가 프랑스령이 되자마자 산업혁명을 통해서 발명된 여러 가지 새로운 농경기술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 농민들이 알제리에 아무 값어치 없는 사막을 올리브 농작이라든지 아니면 와인 농장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미 알제리에 이주해가지고 땅을 엄청나게 사들인 상태였습니다. 1830년에 들어선 정권도 군대를 갖다 계속 주둔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848년에 루이 나폴레옹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알제리아를 그때부터 강제 합병하면서 알제리아는 프랑스의 일부가 됩니다. 근데 이제 지도를 보면 프랑스하고 알제리아는 바다만 건너면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지도자들이 점점 다른 프랑스의 식민지와 다르게 아예 알제리를 프랑스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펴게 됩니다.

2-3.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제국주의

1870년에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나폴레옹이 황위를 박탈당하게 되고 또 한 번 공화정이 들어섭니다. 그러면서 자유 평등 파괴를 프랑스의 국가 이념으로 세우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자유 평등 파괴 그리고 제국주의는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렇게 당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루소나 볼테르 같은 철학자들을 통해서 먼저 왕정이나 종교 같은 것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을 갖다가 전 세계에 전파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중세 종교와 봉건사회의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이제 프랑스 사람들이 당시에 문명화 의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알제리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네가 인종차별을 한다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원주민법이라는 걸 통과시키게 됩니다. 여기에 의하면 알제리 사람이 언제든지 자기의 봉건적인 과거인 이슬람에 대한 어떤 맹목적인 종교적 충성과 옛날 왕조나 부적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프랑스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법치 체계가 일부가 되겠다고 선언을 하면 프랑스 시민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권리를 준다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이 법이 시행한 다음에 프랑스 시민권을 선택한 사람은 몇백 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또 프랑스의 군사 지도자들은 플루타르크 영웅전 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웅전을 많이 읽고 자랐습니다. 그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영웅들을 보면 공화정에서 자란 군인들이지만 이집트 같은 왕정을 평정한 다음에 그쪽 원주민들로 구성된 군인들을 데리고 그다음 나라를 정복하러 떠나죠 이런 것들이 어떤 프랑스 장교 계급의 신화가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정복한 다음에 파리로 개선 행진을 하는데 이집트 출신 기마병들인 Mamelukes 부대가 나폴레옹을 호위했던 것이 굉장히 유명합니다. 프랑스의 제3공화정이 들어선 다음에도 프랑스의 삼색기를 향해서 여러 나라의 원주민 복장을 하고 있는 군인들이 경례를 붙이는 것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이 얼마나 프랑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념인지에 대한 상징의 굉장히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면서 원래 북아프리카의 전사들의 이름이었는데 실제로는 프랑스의 군인들인 수많은 아프리카인 부대가 탄생하게 됩니다. 가장 용맹을 떨친 걸로 유명한 두 개의 민족이 있다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아 쪽의 사람들과 그리고 아프리카에 세네갈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래서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하는 나라가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지나친 신념으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3.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의 생각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드골 장군이 다시 프랑스에 복귀하자 사실 프랑스 본토에 있는 부대들은 거의 대부분 나치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제리아 모로코 그리고 세네갈 출신 군인들이 대거 프랑스에 가서 독일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책에 의하면 26만 명 정도가 넘어갔다고 하는데 그중에 약 15만 명 정도가 그 원주민 부대라고 할 정도로 정말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 보면 아프리카 출신 군인들이 프랑스를 위해서 싸우러 갔는데 음식이나 물건을 배급받는 과정 전투 임무를 부여받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종 차별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이들의 공을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 정부가 얼마나 빨리 잊어버렸는지 이런 것들을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알제리 출신으로서 프랑스 깃발을 달고 많은 공을 세운 사람들이 이런 원한을 가지고 알제리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FLN이라고 하는 알제리의 독립군의 핵심 그룹이 됩니다. 결국 알제리에서 독립전쟁이 나자 드골이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게 됩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던 레지스탕스 장군의 모습과 남의 나라를 탄압하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국민들이 드골에 대한 판타지와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결국 드골 정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아마 이제 프랑스에 갔다 오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프랑스에서 몽마르트 북쪽 지역에 가면 알제리나 모로코 출신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알제리나 모로코 출신 사람들이 대체로 굉장히 가난하게 살고 있고 자녀들이 교육을 못 받아가지고 안 좋은 활동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 수많은 사회 문제와 범죄들이 그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독일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사람이 그런 프랑스 외곽에 있는 알제리와 모로코인들의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금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묵직한 말을 하고 있는 영화라서 프랑스에서 그렇게 극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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