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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지붕 위의 기병, 영화 소개 및 이탈리아 역사 소개

by JAVERICK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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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얼굴이 하늘에 떠있는 사진

영화 지붕 위의 기병에 대한 소개와 줄거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지식을 통해서 이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영화 지붕 위의 기병 소개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영화는 제 인생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남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로망을 갖게 해 준 영화입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한 프랑스 영화입니다. 바로 지붕 위의 기병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Jean Giono라고 하는 프랑스 남부 소설가의 장편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1830년대가 배경입니다. 이때는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을 때여서 역사적 배경으로 이용을 합니다. 그리고 1830년대에는 프랑스에 심각한 콜레라 대유행이 돌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우리와 어떤 시대적 공감대도 있을 영화로서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Jean Giono는 두 가지 의미에서 프랑스에서 굉장히 독특한 작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작가가 파리를 주제로 하지 않고 프랑스의 남부 지역인 프로방스를 주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이 프로방스 출신이고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라든지 그쪽의 독특한 문화 또는 미신에 대해서 책을 많이 쓰기 때문에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방스는 자연경관이 워낙 아름다워서 반 고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거기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프로방스의 옛날 모습을 재연을 했기 때문에 자연의 경관이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Jean Giono는 또 한편으로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모험가라는 독특한 타이틀로 불립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고 Jean Giono의 많은 소설들은 긴 장정을 떠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근데 지금 지도에서 보면 다 자기의 고향 근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독특한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붕 위의 기병이라는 소설도 Angelo Pardi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기병 한 명이 Jean Giono의 실제 고향이었던 프로방스의 조그마한 도시인 마노스크에 도착하는 걸로 시작이 됩니다. Angelo Pardi는 북이탈리아 장교인데 그 당시 북 이탈리아를 점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장교를 죽인 다음에 프랑스로 도망을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동지를 찾아다니는 중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 프랑스의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사람들이 외부인에 대해서 극심하게 민감해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지붕 위로 도망쳐서 지붕을 통해서만 이동을 하면서 자기의 동지를 찾아다니는 그런 외로운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이 소설의 제목이 지붕 위의 기병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방역망을 뚫고 자기의 남편을 찾아가기를 원하는 한 부르주아 여성을 만납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를 하는데 같이 말을 타고 프로방스를 가로질러 장정을 하는 Platonic 한 로맨스 스토리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Jean Giono는 Angelo Pardi라는 인물을 가지고 세 개의 소설을 썼고 그 세 개의 소설이 전부 다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초기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잘 이해하려면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전개를 알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2. 이탈리아의 역사

2-1. 이탈리아 독립의 시작

우리는 이탈리아라고 그러면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로마 이런 것까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나라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는 그 역사가 한 160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전에는 이탈리아라는 어떤 나라의 이름이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장화처럼 생긴 그 땅 이름이었습니다. 그냥 지명이었습니다. 그 지명 안에 여러 도시 국가들이 있었다고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도시들은 대체로 로마 제국이 세운 굉장히 오래된 도시들입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후 한 4백 년 정도에 멸망했지만 이 도시에 있던 사람들이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의회 같은 나름의 자치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살아갔습니다. 근데 애로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이탈리아 반도를 왜적들이 침입해 오는데 이 로마 제국의 군대가 더 이상 이탈리아 반도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도시 국가들은 북방에서 려 내려오는 그들이 생각할 때 야만인 추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센 사람과 거래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역 수익의 일부를 바칠 테니까 다른 작은 왜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달라는 거래를 했습니다. 왜적들 중에서 나중에 가장 센 사람이 독일에 기반을 하고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독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에 복속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역사책을 보면은 피렌체나 베네치아나 밀라노 같은 도시들을 신성 로마 제국에 복속되어 있는 자유 도시라고 애매하게 설명을 합니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들이 잠깐 북이탈리아도 내 땅 아니야라고 그러면서 알프스 삼백을 넘어가지고 쳐들어왔다가 거기서 이탈리아에 굉장히 복잡한 시 정치에 휘말렸다가 다시 퇴각하는 그런 역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역사의 반복이 어떻게 보면 중세 이탈리아 역사의 전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로마의 남쪽으로 있는 남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는 프랑스와 스페인에 기반을 하고 있는 외래 왕조들이 계속 번갈아가면서 다스려왔기 때문에 그쪽은 또 북이탈리아와 굉장히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과 남 이탈리아를 하나로 모아가지고 이탈리아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라고 하는 움직임을 il Risorgimento 다시 솟아오르다는 뜻으로 부릅니다. il Risorgimento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가리발디 장군과 가리발디 장군이 군사를 담당했을 때 정치 쪽을 담당한 마찌니라는 인물입니다. 이 인물들이 있기 전에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만들자라는 사상을 갖다가 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Angelo Pardi라는 사람이 그런 초기 이탈리아 독립운동가 중에 한 명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2. 근대 국가로의 변화

중세기에는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풍습을 가진 여러 영주들이 어떤 한 황자한테 충성을 하면서 이렇게 엉성하게 얽혀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가 되면 국가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아예 달라지게 됩니다. 프랑스혁명과 뒤를 이은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국가의 개념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의 법이 특정한 영토에 똑같이 적용되고 중앙 행정 조직을 가지고 있는 그런 나라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봉건적이고 중세적인 어떤 나라가 오스트리아라는 근대 국가가 됩니다. 그러면서 신성 로마제국의 조국을 바치던 북이탈리아를 오스트리아의 행정 시스템에 편입하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 부르주아들이나 귀족들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자기 동네에서 자기가 왕 노릇을 하고 가끔씩 황제의 사신이 오면 잘 먹이고 돈 좀 줘가지고 보내면 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스트리아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여기다 동사무소를 세우고 오스트리아 출신 군인이나 경찰들이 우리 동네에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옛날같이 황제와 도시 사이의 자유 계약 관계가 아니라 복속이 된 식민지나 마찬가지다라는 인식이 끌어 오르던 시대가 바로 Angelo Pardi가 살던 1820년대에서 1830년대입니다. 그런데 Angelo Pardi라는 인물을 보면은 우리가 볼 때는 좀 특이한 게 있습니다. 굳은 결의의 독립운동가의 이미지가 전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봉건적인 전통을 갖다가 굉장히 좋아하는 하위 귀족입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장교를 죽이는 과정에서도 중세기 기사도에 맞춰서 장교한테 결투를 신청한 다음에 하인들이 무기를 들고 와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방식으로 그 사람과 결투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이 중세기 같으면 귀족들끼리 이렇게 결투하는 것은 법에 접촉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인 것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도망 나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세 이탈리아가 근대 국가로 변해가는 과도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2-3. Carbonaro와 이탈리아의 통일

초기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을 갖다가 흔히 이탈리아 역사책에서는 Caebonaro라고 부릅니다. 숯을 굽는 사람을 뜻합니다. 진짜 숯을 굽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주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프리메이슨이라고 불리는 조직과 비슷한 비밀 결사대가 있었고 이 비밀 결사대의 이름이 바로 Caebonaro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다빈치 코드 같은 여러 가지 소설이나 영화 때문에 프리메이슨을 굉장히 많은 어떤 음모론의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역사 속의 프리메이슨은 기본적으로는 독서 클럽이 왕정 시대에는 공화정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유럽의 교육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테네 등의 도시국가들이 로마 초기의 정치 형태가 공화정이었기 때문에 왜 로마와 그리스는 공화정을 했는데 우리는 못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몰래 만나서 북클럽을 운영하는 걸 갖다가 대체로 프리메이슨이라고 불렀고 여러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습니다. 나중에 프랑스혁명이나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났을 때 이 프리메이슨들이 거대한 국가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본 사람들이 이런 혁명들이 프리메이슨의 음모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날의 그런 음모론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프리메이슨들의 심보를 보면 거대한 컴퍼스가 있고 그 밑에 피라미드가 있는 형태가 있고 또 프리메이슨에서 그 메이슨이라는 단어 자체가 석공이라는 뜻입니다. 석공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이해하면 프리메이슨을 좀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거대한 컴퍼스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프리메이슨들은 무신론자들은 아닌데 중세기의 종교는 미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을 위대한 건축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컴퍼스가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건축가라는 것은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수학적 과학적 규칙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성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고 법치가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메이슨 석공이라는 단어가 신이 위대한 건축가이고 우리가 그의 뜻을 행하는 석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중세기 역사에 보면 노트르담 성당이나 왕들이 사는 성을 지을 수 있는 석공들은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나 사제들한테도 임금 협상이라 이런 데서 꽤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산층들의 자유를 대표하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이 프리메이슨들을 형성하는 가장 큰 계급이 부르주아들이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이란 이름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근데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어떤 이미지를 가진 중산층 계급이 숯을 굽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리메이슨의 이탈리아 버전은 Caebonaro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Angelo Pardi가 Caebonaro의 멤버인 것입니다. Caebonaro라는 그룹은 프리메이슨과 마찬가지로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이들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 쳐들어왔을 때 프랑스가 먼저 혁명과 공화정을 이뤄본 나라기 때문에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지배해야 빨리 개혁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나폴레옹 편에 많이 가담했다고 합니다. 그때 나폴레옹의 장군 중에 한 명인 Joachim Napoleon Murat라는 사람이 나폴리의 왕이 되는데 그 밑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다음에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다시 이탈리아가 봉건제로 돌아가니까 Caebonaro는 다시 지하 조직이 됐지만 한 번 경험했던 어떤 그런 법치와 행정시스템을 다시 이탈리아에서 복구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1830년대에 독립운동의 불씨가 붙여지고 마침내 1848년에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독립 전쟁이 시작이 됩니다. 그때 오스트리아를 쫓아내고 이탈리아에서 자기가 왕 노릇을 하려고 하는 수많은 이탈리아의 지역 영주들이 이 독립운동을 후원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네끼리 서로 통일 이탈리아가 생기면 그것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여러 가지 이렇게 정치적인 술수를 둡니다. 그중에서 가장 나중에 승자가 된 사람이 이탈리아의 북 서쪽에 자리 잡고 있던 사보이아라고 하는 조그마한 왕국의 왕이었던 Vittorio Emanuele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통일 이탈리아의 첫 번째 왕이 되면서 이탈리아의 건국과 통일이 완성이 됩니다.

3.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의 의미

이 영화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독립전쟁이고 하나는 1830년대에 프랑스를 강타한 콜레라 대유행입니다. 이 영화에 보면은 Angelo Pardi가 작가 Jean Giono의 고향인 마노스크에 도착을 하는데 거기서 오래 말을 타고 왔으니까 물을 먹으라고 그럽니다. 외국인이 와서 우물에서 물을 먹으려고 하니까 외국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콜레라가 돈다고 하면서 이 사람을 마을 주민들이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Angelo Pardi가 지붕 위로 도망가서 거기서 도망 다니면서 생활을 하게 되는 이 줄거리입니다. 이것은 Jean Giono의 딸에 의하면 이 작가의 심정과 굉장히 깊은 관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Jean Giono는 20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작가인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편을 적극적으로 들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레지스탕스 편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들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많은 부분을 갖다가 이 나치와 협력을 했다고 말하며 그 사람들을 처형해야 된다는 인민재판 같은 걸 하고 있던 그런 시기입니다. 그래서 Jean Giono는 그것이 프랑스가 광기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콜레라 때 사람들이 미쳐가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 모든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서 지붕 위에 혼자서 자기만의 이상과 Platonic 한 사랑을 가지고 살고 싶은 그런 욕망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신문에 나오는 이런 글들이라든지 이런 걸 보면 모든 세대 사람들이 다 자기 세대는 미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모순에서 벗어나가지고 혼자 조용히 자기 이상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사람들이 대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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