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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라스트 모히칸, 역사 배경 설명, 인디언 전쟁

by JAVERICK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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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인공이 달리고 있는 사진

미국 독립전쟁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인디언 전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빈지티 영화 라스트 모히칸 역사 배경 설명해보겠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라스트 모히칸의 뜻을 설명하고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비버 전쟁과 윌리엄 헨리 요새 사건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라스트 모히칸이란?

오늘날 우리가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이 전쟁터라고 하면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8 세기에는 이 지역이 전쟁터였습니다. 그 당시 이제 캐나다는 새로운 프랑스라고 불렀죠 프랑스령이었고 지금의 미국은 아직까지 영국령이었습니다. 17 세기와 18 세기 사이에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는데 제대로 된 전쟁으로 폭발하게 된 계기가 바로 프랑스 인디언 전쟁입니다. 이 영화는 이제 영국군 요새인 Fort William Henry라는 곳을 지키고 있는 먼로라는 장교의 딸 앨리스 먼로가 북미 원주민 부족 중에 하나인 Mohican 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뉴욕 북쪽에 있는 숲을 뚫고 여행을 하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프랑스 인디언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 Fort William Henry의 학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왜 북미에서 대치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북미 원주민들이 어떤 부족들은 프랑스 편 어떤 부족들은 영국 편을 들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 100 년 정도 역사를 되감기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인디언 전쟁의 역사

2-1. 비버 전쟁

이 전쟁이 있기 한 100여 년 전에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 거대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흔히 역사가들이 비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17 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북미에 정착을 하러 왔다기보다는 그쪽에 비버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비버 모피를 수입하러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비법 오피는 유럽인들 특히 귀족들의 옷감으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 나라가 이 비버 무역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데 프랑스는 오늘날에 캐나다 지역을 중심으로 이제 원주민들과 거래를 하면서를 사들였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원주민들이 맨하타라고 부르던 지역의 모피 거래소를 만들었습니다. 거기가 지금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입니다. 그러면서 유럽 사람들은 원주민들로부터 모피를 사고 원주민들에게 대체로 화약이나 총 또는 술 같은 거를 팔아가지고 이제 거래를 하게 됩니다.근데 이들이 가지고 온 것은 유럽의 상품뿐이 아니라 또 유럽의 병균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그 당시 북미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도는 병에 대해서 항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천연두 같은 병이 돌아서 북미 원주민 인구가 완전히 초토화되게 됩니다. 대부분의 이제 원주민 공동체가 유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죽자 여기에 대해서 이제 어떤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 대책은 이제 인류학자들이 흔히 애도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이었습니다. 애도 전쟁이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일종의 장례의 일환으로서 전쟁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례의 일환으로서 전쟁을 해서 다른 부족을 포로로 잡아와서 그 사람들에게 자기 부족의 문화와 습관을 가르치고 그쪽 아이들을 양아들을 삼아서 자기네 공동체가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인구를 확보하는 그런 것이 바로 에도 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원주민 부족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하다 보니까 더 많은 비버 털을 확보 해서 네덜란드나 프랑스 사람들한테 전해주고 더 많은 침묵이 총을 갖다가 살 수 있는 부족들이 당연히 유리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비버 전쟁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비버 전쟁에서 가장 위력을 떨친 5 개 부족들이 나중에 이제 자기네끼리 공동체 어떤 군사 연맹 같은 거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을 떠날 때 이 다섯 부족은 하나의 군대로 이제 출전을 하게 됩니다. 이 부족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주변의 부족들 특히 알곤켄 부족이 이들을 방울뱀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알곤켄 언어로 방울뱀이라는 단어가 이리나코였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이 발음을 잘못 알아들어가지고 자기네들 방식으로 이들을 이로코아라고 부르게 됐고 영어식으로는 Iroquois 족이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Iroquois 들의 위력에 밀려난 부족들이 있었습니다. 갈 데 없는 부족들은 이제 서부로 멀리 도망치든지 아니면 백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선교사 공동체에 들어가서 백인들의 보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공동체 중에 하나가 Stock bridge라고 하는 허드슨 강변에 있는 공동체가 있었는데 여기는 이제 개신교 공동체였고 주로 독일 선교사들이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에 모여든 여러 부족 중에서 허드슨강에 옛날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쉬지 않는 물의 아들들 또는 쉬지 않는 물가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영어로 발음이 Mohican과 비슷해서 이 부족은 그 이후로 Mohican 족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Mohican 들은 Stock bridge에서 개신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중에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할 때 가톨릭교도인 프랑스에 대항해서 용맹하게 싸웠고 그래서 이 소설에서도 영국군의 입장 영국군들이 이제 주인공이기 때문에 굉장히 용맹하고 믿음직한 원주민으로 묘사가 됩니다. 하지만 Iroquois 족 때문에 밀려난 원주민들 중에서 가톨릭 공동체로 간 원주민들도 있었습니다. Mohawk 족들의 일부가 그랬는데 이런 부족들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사악한 원주민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2-2. 영국의 등장

그런데 17 세기부터 이 원주민들과 프랑스 네덜란드인들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게 이제 영국인들이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인들은 실제로 맨해튼이라는 땅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몰아내고 거기에 자기들의 도시인 뉴욕을 세웁니다. 근데 영국인들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인들과 굉장히 다른 이유로 북미에 왔습니다. 이들은 아예 거기다 정착지를 만들어서 농사를 짓고 먹고 살 목적으로 왔습니다. 떠날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돈을 벌어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원주민과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다기보다는 땅을 가지고 자꾸 싸우게 되고 특히 펜실베이니아가 팽창하면서 밀려난 부족들 쇼니족이나 델라웨어족 같은 부족들이 점점 서부로 도망쳐서 오늘날에 오하이오 계곡 쪽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델라웨어족과 쇼니족이 오하이오 쪽으로 이주를 하자 이제 Iroquois 연맹이 이 오하이오 계곡에 영토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사람을 파견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식민지 총독 같은 개념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타나 카리손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타나카리손이라는 사람과 그 당시 이제 버지니아 주의 젊은 농장 주자 민병대장이었던 조지 워싱턴이라는 사람이 어떤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 실수로 인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그것이 이제 프랑스의 인디언 전쟁입니다. 이것이 미주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 유럽까지 전쟁의 불씨가 옮겨 붙어서 유럽도 전쟁터가 되고 스페인 프랑스 영국 같은 유럽의 열강들이 전쟁을 하니까 그 식민지들이 퍼져 있던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서 전쟁이 나면서 이것이 칠 년 전쟁이라고 하는 역사가들이 세계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전쟁으로 커지게 됩니다. 이 전쟁의 발단은 이제 그 델라웨어와 쇼오니족들이 오하이오로 이제 도망을 간 다음에 바로 영국인 상인들이 따라 들어오면서 이제 시작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펜실베이니아 출신이었던 George Croghan이라는 사람이 오늘날 오하이오의 피카 윌라니라는 곳에다가 무역 거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Virginia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포부가 컸습니다. Ohio Company of Virginia라고 하는 부동산 회사를 만들어서 오하이오에 있는 부동산을 농지로 개발해서 사람들한테 분양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프랑스 입장에선 이게 굉장히 긴장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하이오 쪽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전통적으로 프랑스한테 모피를 팔고 프랑스한테서 총각 화약을 받아 갔었습니다. 근데 George Croghan 이 아주 좋은 조건을 제시를 해주니까 이 피카 윌라니로 그 무역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여기에 대해서 이제 화가 났고 여기가 전통적으로 자기네 상권이라는 걸 더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서 오하이오 강변에다가 Fort Duquesne이라고 하는 요새를 짓게 됩니다. 이 요새 주변에 이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것이 오늘날 미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피츠버그로 발전했습니다. 이 지역에 이제 긴장이 고조되다 보니까 프랑스와 Virginia 가 각각 이제 군대를 갖다가 파견하게 되는데 프랑스는 Jumonville이라고 하는 장교를 보내게 되고 Virginia는 젊은 지주 집안의 아들이자 굉장히 정치적 야욕이 강했던 G.Washington을 파견합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사람입니다. 근데 이 오하이오의 Iroquois 족 대표로 와있던 타나카리송이 좀 다른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조지 워싱턴을 돕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을 도와서 Jumonville를 포로로 잡는데 일조를 합니다. 그다음에 갑자기 조지 워싱턴이 보는 앞에서 한 설화에 의하면 Jumonville이라는 사람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셨군요이라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얼마 후에 조지 워싱턴이 프랑스의 포로로 잡히게 되는데 이때 프랑스인들이 조지 워싱턴한테 종이를 주면서 여기 서명만 하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항복 서약이라고 말했는데 조지 워싱턴이 그 서류에 서명을 하고 집에 왔다고 합니다. 근데 그 서류의 내용이 영국이 Jumonville를 살해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갖다가 어떤 진술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류가 프랑스로 전해지면서 그다음에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불가피해졌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조지 워싱턴의 실수로 이 전쟁이 났다고 볼 수 있는데 조지 워싱턴은 끝까지 자기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서 그 문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모르고 사인을 했고 통역사가 자기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2-3. 뉴욕에서 퀘벡까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이제 레이크 졸지라고 하는 호수 근처인데 이 레이크 졸지는 오늘날은 뉴욕에서 한 3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이어서 뉴욕 부자들의 별장들이 이제 즐비한 뉴욕의 가평 같은 곳입니다. 이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냐면 허드슨강을 우리 식으로 비유하자면 뉴욕의 한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뉴욕에서 배를 타고 쭉 이제 허드슨강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은 이제 북쪽에 레이크 조지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이 레이크 조지 바로 옆에 Champlain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 Champlain 호수에서 강을 타고 또 올라가면 바로 오늘날까지도 퀘벡의 가장 중요한 도시인 퀘벡 시티하고 몬트리올이 나옵니다. 옛날에 북미에는 아직 길이 많이 없어서 대부분의 병력이나 보급품이 강을 타고 이동을 했기 때문에 뉴욕에서 캐나다의 가장 중요한 도시까지 바로 수로로 갈 수 있는 거점이었기 때문에 레이크 조지와 Champlain 근처는 프랑스와 영국의 요새들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이제 영국과 프랑스 장교들은 대체로 본국에서 파견이 된 사람들이어서 이쪽의 지리나 이런 걸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원주민들이 정찰대 역할을 해주거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국인들 같은 경우에는 특히 이제 가톨릭 프랑스와 열심히 맞서 싸울 Stock bridge 선교 공동체의 원주민들을 많이 활용을 했는데 이 Stock bridge에 있는 원주민들 중에 Mohican 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알리스 몬로를 돕는 원주민들이 Mohican 족으로 설정이 돼 있는 것입니다.

2-4. 월리엄 헨리 요새의 학살

그럼 이 영화에 이제 클라이맥스의 배경이 되는 윌리암 헨리 요새의 학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쪽에서 이제 프랑스 장교 몽칼름이라는 사람이 영국군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제 자기가 군대를 통설하게 됐는데 그 군대가 프랑스인들과 원주민으로 이렇게 섞여서 구성된 군대였는데 이 원주민들의 문화를 잘 몰랐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부대를 끌고 어느 날 이제 영국 부대를 갖다가 기습 공격을 하게 되는데 이 몽칼름이 지휘하던 원주민들이 영국군 포로들을 자기네 동네로 잡아가려고 했습니다. 이걸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유럽에서 막은 사람이 어떻게 같은 크리스천이고 같은 백인인 영국군을 우리가 원주민의 포로로 잡혀가게 놔둘 수가 있느냐 해서 돈을 줘서 그 포로들을 자기가 원주민들로부터 사서 풀어줍니다. 근데 이 원주민들은 이걸 잘못 이해를 했습니다. 영국인 포로를 데리고 가면 몽칼름이라는 사람이 이거를 노예로 사는구나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영국인 포로를 잡아가지고 몽칼름한테 팔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그 소문이 원주민들 사이에 교역망을 타고 번져가지고 오대호 주변에 살고 있던 휴런족 오타와 족 이런 부족들이 몽칼름의 지휘 하로 몰려들게 됩니다. 나중에 몽칼름이 이 부대를 이끌고 윌리암 헨리 요새를 공격해서 그 요새를 함락시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보면은 알리스 몬로가 도착했을 때 이미 이 요새가 프랑스 군들에 의해서 포위되어있는 상태라는 걸 발견하고 이제 절망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근데 이 요새를 함락한 다음에도 몽칼름은 굉장히 유럽 귀족 장교처럼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유럽 귀족 장교들은 잘 싸운 적에게는 명예롭게 항복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신사답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전쟁의 명예와 함께 항복하는 것이라고 두 신사끼리 이렇게 딱 약속을 한 다음에 백기를 전달받고 항복한 부대가 유니폼도 있고 부대기도 가지고 심지어는 상징적으로 대포 한 대까지 줘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그런 항복의 의뢰 같은 게 있었습니다. 대신 이 항복한 군대는 신사로서 자기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야 됐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약간 귀족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왕한테 가서 내가 이런 조건에 항복했습니다. 그러면 왕이 그래 그러면 집에 가서 쉬어라 약간 이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몽칼름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윌리엄 헨리 요새 몬로한테 이런 항복을 제안하게 됩니다. 영국군이 그냥 집에 갑니다. 근데 이 몽칼름 주변에 모여들었던 오타와족이나 뭐 휴론족 같은 경우에는 이 포로들을 공짜로 풀어주는 걸 보고 아주 분노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족들이 윌리암 헨리 요새 하여서 항복해서 나가는 영국 패잔병들을 습격해서 포로로 잡아가거나 학살한 사건이 바로 윌리엄 헨리 요새의 사건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문화 간 소통의 실패가 빚어낸 굉장히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헨리 요새 학살이 있은 후 이 사건이 막 소문의 소문을 타고 영국으로 번지게 됩니다. 영국인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냐면 몽칼름이라는 사람이 위선자라서 겉으로만 포로를 명예롭게 풀어주는 척하고 사실은 인디언들을 시켜가지고 뒤에서 다 죽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받아들여집니다. 나중에 이제 결국 영국이 프랑스 명이었던 캐나다를 차지하면서 퀘벡과 몬트리올 같은 도시에 입성을 했을 때 프랑스인들의 유니폼을 다 뺏고 부대기도 다 뺐고 배에 실어가지고 영국으로 전쟁 포로로 호송을 한 다음에 프랑스 포로와 이렇게 맞바꾸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역사가 이제 퀘벡 사람들한테 아직도 영어를 쓰는 캐나다 사람들과 화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깊은 역사적 상처로 남게 됩니다. 두 번째 이 사건의 여파는 여기서 이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캐나다의 섬 밖으로 벗어나게 되고 인도 남부의 프랑스 식민지가 있었고 인도 북부의 영국 식민지가 있었는데 인도에서도 프랑스가 패배하게 되면서 프랑스가 유럽의 가장 중추적 강대국이었던 시절이 저물고 대형 제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게 됩니다.

3. 실수와 역사적 상처

하지만 아마 윌리엄 헨리의 학살의 스토리가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면서 가장 손해를 많이 본 것은 원주민 들일 겁니다. 나중에 이제 프랑스 인디언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독립국가가 된 다음에도 이 스토리는 미국의 초기 개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계속 후배로 이렇게 전수가 됩니다. 구전으로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서부 개척을 하면서 임대원을 학살할 때마다 사람들이 이것은 그냥 윌리엄 헨리 요새 학살에 대한 보복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하는데 이 스토리가 많이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이 스토리가 보여주는 것은 작은 역사적 사건이 역사의 실제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사실 조지 워싱턴이 항복 서약에 서명을 했던 것도 그렇고 이 윌리엄 헨리 요새 학살도 그렇고 다 실수로 일어난 것들입니다. 근데 이 실수로 일어난 조그마한 사건이 어떻게 포장되는지에 따라서 역사의 실제 흐름에 굉장히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과 그것이 실수로 인정되지 않고 사람들이 고의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될 때 이백 년 동안 퀘벡과 나머지 캐나다 사이 또는 미국과 원주민들 사이의 관계를 내 독소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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