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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 영화, 역사 배경 설명

by JAVERICK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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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얼굴이 있는 사진

십자군 전쟁 중에 크리스천 군단의 최고의 패배인 하틴 전투를 배경으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역사 배경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설명과 이슬람 세력의 불화와 이슬람 세력의 통합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인 하틴 전쟁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 영화에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십자군 전쟁 설명

우리가 십자군 전쟁이라 그러면 11세기부터 시작해서 서유럽의 여러 군주들 또는 무사들이 크리스천 형제 국가인 동로마 제국을 수호하고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크리스천들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오늘날의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침략했던 사건을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십자군 관련된 책을 읽으면 굉장히 어려운 것이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군대라고 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이 두 국가 사이에 선전 포고부터 종전 협정까지의 어떤 과정이 있는 그런 전쟁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세 유럽의 사회 구조상 기사들은 거의 대부분 독립적인 무력 집단이었습니다. 대체로 어떤 한 영주한테 충성을 서약하고 있었고 무사들을 데리고 모여서 한 군대처럼 움직이다가 그 목적이 달성이 되면 새로 얻은 영토의 영주가 돼가지고 흩어지는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을 했습니다. 이 십자군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지를 탈환한다는 정확한 목적이 있을 때까지는 한 군대처럼 움직였지만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에는 그 지역의 땅을 여러 나라로 나누어서 많은 영주국을 세우고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Tripoli, Edessa, Antioch 그리고 Jerusalem 왕국 같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십자군 일차 십자군 전쟁의 영웅이었던 Raymond de Saint Gilles, Godfrey of Bouillon 같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서로 핏줄이 다르다 보니까 겉으로 볼 때는 예루살렘 왕국이라는 큰 틀 아래 있는 여러 귀족들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지만 실제로 봉건 귀족 같게 자기의 1차 충성은 자기 영토였고 자기의 2차 충성은 자기 핏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영토를 확장하거나 한 영주의 자손들끼리 유산 싸움을 하게 되면서 십자군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군들이 차지한 영토 바로 옆에 오늘날의 시리아에 해당되는 땅에 있는 이슬람교도의 영주들도 똑같았습니다. 자기들끼리의 유산 싸움 형제들끼리의 영토 싸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사실 비슷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종교의 라인을 거슬러서 동맹을 형성하기도 하고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 싸우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시리아의 다마커스의 영주였던 이슬람교도인 루드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진 곳에 오늘날의 이라크 모슬이라는 도시의 영주인 자왈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데 자왈리의 세력이 너무 세지니까 루드완이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트리폴리의 영주인 탄크레디와 연맹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왈리도 트리폴리와 가장 앙숙인 나라가 어딘지를 생각을 하다가 트리폴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십자군 국가인 에데사랑 동맹을 맺게 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인 다마스커스와 십자군인 트리폴리의 군대가 한 편을 먹고 반대쪽에는 이슬람 교대인 모술의 군대와 또 십자군인 에데사의 군대가 한 편을 먹어서 종교의 라인에 관계없이 서로의 이익을 가지고 싸웠던 그런 역사도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보면 굉장히 흔합니다. 이거보다 좀 더 강한 얘기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왕 발드윈 2세한테 앨리스라는 딸이 있었는데 발드윈 2세가 안티오크와 좀 더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딸을 안티오크에 영주한테 시집을 보냅니다. 바로 보에몽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이 보에몽드가 이슬람교도들과 싸우다가 전사를 하게 되니까 아버지가 당연히 내 사위가 죽었으니까 이 땅은 내가 통치하겠다고 말하며 안티오크를 자기가 통치하려고 합니다. 근데 그의 딸이 안티오크는 아버지의 땅이 아니라 본인의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당시 이슬람 군벌 중에서 가장 떠오르는 세력이었던 이마드 앗딘 젱기라는 사람과 연합을 해서 십자군인 자기 아버지와 맞서 싸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읽게 되면 실제로 이슬람교도들 또는 크리스천 교도 영주들이 종교 라인으로 딱 나눠서 싸웠던 적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 적이 딱 몇 번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영화에서 묘사된 하틴 전투이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또 유럽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회자가 많이 되고 이렇게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는 전투입니다.

2. 십자군과 이슬람의 역사

2-1. 이슬람 세력의 불화

십자군들이 중동에 진출했을 때 그들은 우리는 이슬람교도들과 맞서 싸운다고 얘기를 했지만 사실 이슬람교도들과 맞서 싸우려면 이슬람교도들이 어떤 하나의 정치 세력이어야 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이슬람 종교라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에는 북아프리카, 스페인 이쪽부터 중국과의 경계까지 퍼져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종교였습니다. 그리고 이 종교가 두 개의 종파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종파는 오늘날까지도 중동 관련된 뉴스에서 계속 언급이 됩니다. 원래 Khalifah라고 하는 직책은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는 땅 전체의 어떤 상징적인 리더입니다. 그 당시에 두 명의 Khalifah가 있었습니다. 수니파의 Khalifah는 오늘날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하고 있었고 시아파의 Khalifah는 오늘날 이집트의 카이로를 거점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 Khalifah가 두 명이 있는데 그들이 실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십자군들이 오기 얼마 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잘 타고 화를 잘 쏘는 유목민족인 투르크족들이 점점 중동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싸움을 잘하다 보니까 Khalifah나 귀족들이 이들을 용병으로 자주 고용을 했습니다. 투르코족들은 자기네끼리 연합해가지고 거대한 군부 세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투르크족들이 큰 군부 세력이 되면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서 Khalifah를 볼모로 잡아서 술탄이나 비지르 같은 타이틀을 받아서 이렇게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십자군들이 쳐들어왔을 당시에 투르크족의 한 갈래인 셀주크라고 하는 부족의 후예들이 사실상 이 중동의 권력을 가장 많이 잡고 있었습니다. 셀주크 왕조는 수니파였습니다. 게다가 셀주크 왕조도 영토가 커지니까 자기의 많은 자손들한테 도시 하나를 주는 봉건 정치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 정치의 특성상 가족 간의 싸움이 굉장히 많이 나고 유산 싸움이 굉장히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십자군들이 쳐들어왔을 때 오히려 자기 형제를 십자군들이 해치워 주기를 바라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안 움직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같은 경우에는 십자군들이 들어와서 수니파인 셀주크들과 싸우면 우리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서 십자군들이 타지에서 싸우고 있는데도 초기에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2-2. 이슬람 세력의 통합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이 더 우세한 지 크리스천이 더 우세한지는 사실 많은 영주들을 통합해서 모이게 할 수 있는 영주가 있는지 없는지 차이로 결정이 됩니다. 근데 이때 이슬람권에서 모술과 다마스커스와 알레포라는 이 세 개의 굉장히 중요한 이슬람 도시를 한 정치권 안에 통합하는 리더가 나옵니다. 바로 이마드 앗딘 젱기라는 사람입니다. 이마드 앗딘 젱기가 이슬람 도시를 통합하기 시작하니까 가장 먼저 위협을 느낀 사람은 사실 십자군이 아니고 바그다드에 있는 수니파 Khalifah였습니다. 수니파 Khalifah와 쟁기가 몇 차례 걸려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그때 쟁기가 한 번 한 전투에서 크게 패해가지고 죽을 뻔합니다. 그때 쿠르드족 용사였던 아윱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목숨을 건지게 되는데 이 아윱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중에 아윱의 아들인 살라딘이라는 사람이 십자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이 되고 이 영화에서도 나중에 이벨린이 맞서 싸우는 주 캐릭터로 나옵니다. 이마드 앗딘 젱기가 죽은 다음에 누르앗딘이라고 하는 쟁기의 아들이 후계자가 됩니다. 이 시점에 살라딘이 이슬람 세계의 리더로 떠오르는 계기가 생깁니다. 이집트에서 Khalifah 바로 아래에 있는 실권자인 비지르가 쿠데타로 이집트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시리아에 있던 누르앗딘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누르앗딘을 설득을 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군대를 보내서 비지르가 이집트의 권력을 찾는 것을 도와주면 이집트의 부와 권력을 다 나눠주겠다고 설득을 합니다. 그래서 누르앗딘이 고민을 하다가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누구를 보내면 좋을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자기의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아윱이라는 사람의 형제인 시르쿠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 시르쿠와 시르쿠의 조카이자 아유의 아들 살라딘을 이집트로 파견하게 됩니다. 비지르를 이집트의 실권자로 복권시키는 데 성공을 합니다. 근데 이 비지르가 배신을 합니다. 오히려 십자군과 손을 잡고 시르쿠를 이집트에서 쫓아냅니다. 누르앗딘은 십자군과 이집트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몇 년 후에 이 시르쿠에게 또 다른 군대를 주어서 다시 한번 이집트를 정벌하러 보내게 됩니다. 시르쿠가 엄청난 전략가였습니다. 이집트 안에서 여러 가지 전략적 기계를 통해서 이집트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부와 영광을 얻게 된 얼마 후에 시르쿠는 그걸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근데 그때 이집트에 있는 시아파 Khalifah가 생각을 해보니까 새로 쳐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빈약한 인물을 시르쿠의 후계자로 골라야 나중에 자기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르쿠의 조카이자 아윱의 아들인 살라딘을 이집트의 비지르로 임명하게 됩니다. 누르앗딘이 죽고 난 다음에 살라딘이 억제하고 있던 공격성이 갑자기 드러났는지 살라디는 군대를 몰아서 시리아에 쳐들어가서 누르앗딘의 아들들을 시리아에서 쫓아내고 누르앗딘이 다스리던 땅을 이집트와 통합해서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오늘날에 이라크를 하나의 거대한 나라로 통합하게 됩니다. 살라딘이 거대한 군대를 몰고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서부터 탈환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2-3. 십자군과 하틴 전투

그래서 살라딘과 십자군들이 대결을 벌이는 국면으로 다다르고 있는데 그때 십자군 내부에서도 분란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Tripoli, Edessa, Antioch 그리고 Jerusalem 같은 곳의 귀족들 같은 경우에는 중동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랍어도 대체로 유창하게 할 줄 알았고 당시 유럽보다 훨씬 발전돼 있던 아랍의 라이프 스타일과 철학, 과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십자군들이 정복한 국가들의 부가 실크로드의 서쪽에 걸쳐 있는 것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유태인이나 아르메니아의 상인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데 그에 비해서 이 Edessa가 누르앗딘에 의해서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밀려온 유럽에서 막 온 십자군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달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싸우러 온 사람들입니다. 같은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이 이슬람들이랑 같이 돈거래를 하고 노닥거리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빨리 전투에서 전승을 해가지고 귀국을 해야 되는데 전쟁이 느려지니까 굉장히 답답했습니다. 게다가 유럽에서만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랍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크리스천 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교도들에 대한 적대감도 훨씬 더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십자군 그룹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사실 이 십자군 진영 내에서도 중동에서 태어난 이대 십자군들과 지금 막 온 1세대 십자군들 사이에 갈등이 굉장히 심해지는 그 과정이 이 영화에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 두 부대의 전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데 살라딘은 물이 귀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티베리아스라고 하는 호수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상대편이 물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진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군들은 살라딘의 진영까지 가는 데 4시간밖에 안 걸렸기 때문에 4시간 만에 가서 싸워서 이긴 다음에 물을 마시면 된다 우리의 걸음을 늦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많이 챙겨가는 것이 오히려 더 불리하다고 생각해서 물을 많이 안 가져갔다고 합니다. 살라딘이 궁수들을 보내서 계속 가는 길을 방해해서 4시간에 가야 할 길을 거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서 마침내 하틴이라는 데 도착을 했습니다. 근데 하틴에 도착을 했을 때는 너무 목이 말랐는데 이미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전투를 할 수가 없었고 밤새 물을 마시지 못한 채로 아침에 싸우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아랍인들의 기록을 보면 무기를 휘두르는데 십자군들이 목이 말라서 자기가 무기를 휘두르는지 무기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서 몸이 휘둘리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전투에 임하게 되고 여기에서 대패하게 됩니다. 이 십자군들은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인생과 관련된 물건을 성물로 지니고 다니면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서 True Cross라고 영어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 때 십자가라고 여겨지는 성물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성물을 살라딘이 빼앗은 것이 십자군들의 사기에 결정타를 입혔다고 합니다. 살라딘은 그 기세를 몰아가지고 예루살렘에 쳐들어가게 되고 예루살렘은 실제로 루멜레의 영주 베일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그 사람이 실제로 예루살렘의 방어에 굉장히 큰 역할을 했고 나중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나갈 수 있는 항복 조건을 살라딘한테 내밀어서 살라딘을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 기록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3.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의미

제가 이 영화가 흥미롭다고 여긴 거는 사실 십자군 전쟁이 굉장히 지저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영화는 대체로 특정한 영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초점을 전혀 다르게 해서 첫 번째는 크리스천 부대가 패배한 전투를 그렸다는 것이 흥미롭고 두 번째는 그 당시에 아랍 문명의 어떤 발달된 모습 그리고 십자군들 사이에 어떤 내분과 정치적인 계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여서 십자군 전쟁을 굉장히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내었다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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