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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설명

영화 300, 줄거리 소개, 테르모필레 전투, 스파르타, 전쟁영화

by JAVERICK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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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숨 막히는 고대 그리스의 전투 현장을 재현한 영화 300입니다. 300의 줄거리와 300의 배경인 테르모필레 전투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러한 고사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영화 300의 줄거리 소개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현재 그리스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들 또한 정복 대상이었습니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에 페르시아의 사자가 방문합니다. 백성들의 목숨을 아낀다면 페르시아에 절대복종을 하라고 페르시아의 사자가 말합니다. 페르시아의 사자가 백성들의 목숨을 두고 협박을 하자 스파르타의 왕은 화를 내며 그를 구덩이에 빠트려 죽입니다. 레오디나스 왕은 전쟁을 결심하지만 제사장들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왕조차 어길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레오니다스 왕은 열변을 토하지만, 제사장들은 전쟁은 반대합니다. 제사장들은 신탁녀에게 물어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탁녀는 제사장들의 노리개 었습니다. 이미 페르시아에게 금화로 매수된 제사장들은 전쟁을 찬성할리가 없었습니다. 테론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어길 수 없었던 레오디나스 왕은 최소한의 병사 300명의 정예군과 함께 산책을 나가기로 합니다. 수만에 이르는 페르시아 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의 병사를 이끌고 행군을 합니다. 스파르타군은 도중에 다른 도시 국가와 합류하여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들이 페르시아 군과 승부를 볼 곳은 수적 열세를 최소화시키는 좁고 기다린 협곡입니다. 한편, 왕비는 합법적으로 지원군을 보내기 위한 연설을 계획 중입니다. 페르시아의 군대는 스파르타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의 병력입니다. 페르시아 황제의 사자가 스파르타군에게 와서 자비를 베풀듯이 항복을 권유하자 스파르타식으로 답변을 해줍니다. 페르시아의 사자의 팔을 잘라버립니다. 스파르타군이 진을 치고 있는 협곡의 뒤쪽으로 다른 길이 있냐고 레오디나스 왕이 병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때 스파르타에서부터 몰래 뒤를 쫓아왔던 남자가 나와서 뒤쪽에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기형아로 태어나 버려졌지만 항상 스파르타군을 동경해왔습니다. 레오니다스 왕에게 자신을 스파르타군에 합류시켜달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방패를 높게 들지 못했습니다. 레오디나스 왕은 스파르타군의 핵심은 방패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방패를 높게 못 드는 그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레오디나스 왕은 후방 지원을 권유했지만 자신을 거절했다며 잔뜩 화가 난 꼽추남은 스파르타의 방패를 버리고 떠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군과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됩니다.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월등한 전투 능력으로 적을 압도합니다. 아기 때부터 목숨을 건 전투 훈련을 받은 스파르타 정예군은 한 명 한 명이 너무나도 강합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이 밀리게 되고,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직접 레오디나스 왕을 만나러 옵니다. 레오디나스에게는 들을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고 바로 거절을 합니다. 그의 반응을 본 크세르크세스 1세는 매우 화가 납니다.

2. 영화 300의 배경, 테르모필레 전투

이 영화의 주제가 된 테르모필레 전투는 서양의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전쟁입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의 수십만 부대가 오늘날 그리스가 위치하고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에 상륙을 해서 그들의 전쟁 타깃이 있는 아테네를 향해서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테네를 중심으로 몇 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연맹을 급조해서 그들을 막기로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한 명의 병사가 길을 막으면 수천 명의 병사가 두렵지 않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들도 수적으로 열세했기 때문에 아주 좁은 공간인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 군과 격전을 벌이기로 합니다. 스파르타의 300명의 시민 창병 부대를 중심으로 해서 몇 개의 도시 국가에서 모인 6000명 정도의 군인이 여기서 페르시아인들과 3일 동안 싸운 후의 점멸당한 이야기가 테르모필레 전투입니다. 원래 그리스 연합군의 전략적 목표는 페르시아 군대가 워낙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입이 많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서 테르모필레에서 꼼짝 못 하게 하면 결국 페르시아 군대는 식량이 떨어져서 철수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 부대가 테르모필레에서 워낙 빠르게 패배했기 때문에 페르시아 군대가 파죽지세로 아테네 동맹 분들이 많이 있는 아티카라는 곡창지대로 진격을 하게 됐고 그 이후에 아테네는 완전히 불태워서 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전투는 전술적으로 보나 전략적으로 보나 그리스의 완벽한 패배 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담으로 회자가 되고 오늘날까지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18세기, 19세기 유럽 문화인들이 이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수많은 글과 그림과 영화, 연극 같은 것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영국, 프랑스, 미국, 이 세 나라가 서양에서 가장 먼저 의회 제도를 도입하거나 제국주의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또 이때 유럽의 엘리트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 고사를 학교에서 필수 교양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를 숭상하고 그리스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 시샌 민주주의 국가들이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마치 자기네 역사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다르게 왕정국가였고 민주주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대결을 민주투사들이 왕정에 폭압에 맞서 싸운 싸움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이 세 개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제국가였기 때문에 그곳에 쳐들어 가서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민지배의 정당화에도 일부 사용됩니다. 이렇게 고사라는 것은 원래 구전에서 구전으로 이어지면서 그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서 계속 변합니다.

3. 고사를 이해하는 방법

이런 정말 오래된 고사들은 대체로 매 세대에 계속 새롭게 사람들이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그 안에 자기의 아젠다를 집어넣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느 나라 사람이 이야기했느냐에 따라서 구성과 해석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 고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사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 사람의 버전의 고사를 읽어보고, 어떤 특정한 시대에 어떤 사람이 이 고사를 자기 책에 인용했다면 저 사람이 무슨 주장을 하기 위해서 저 고사를 썼을지를 생각하고 읽어야지만 이 고사에 정확한 교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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